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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사 전체에 걸쳐
3.1운동만큼 국내외에 대부분의 민족해방운동 세력이 총화단결-상호협력해서 움직인 사례는 없다. 조선,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 만주와 연해주 등 세계 각지에 광범하게 퍼져있던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은 제1차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숨가쁜 국제정세를 활용하여 놀라울 정도로 척척 들어맞는 콤비 플레이와 공동보조를 보여줌으로써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 - 파리강화회의 - 2.8 독립선언 그리고 최종적으로 3.1 만세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국권침탈 이후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에 화려한 마침표를 찍는 데 성공했다. 당시 중국의 상하이와 베이징 일본의 도쿄 조선의 서울과 평양 미국의 하와이,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 만주의 용정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등 말 그대로 세계 곳곳에 펴져있던 독립운동 세력은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그 시절 정교한 연락체계와 상호신뢰를 통해 종교와 출신지역,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모든 민족해방운동세력을 총망라한, 1919년 2월~3월에 걸친 동시다발적인 독립운동을 기획함으로써 식민지배 10년 동안 누적된 이천만 조선민족의 울분을 극적인 방식으로 폭발시키는 데 성공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치밀한 감시망과 수사망 속에서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끈질긴 추적을 피해 중국-일본 등지에서 벌인 손에 땀을 쥐는 추격전은 당시에 숨가쁘고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한편의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 세력은 단 한번도 1919년에 보여줬던 그 놀라운 일치단결의 저력을 다시는 보여준 적이 없다. 1919년에 대동단결이 가능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제1차세계대전 종전 직후에 고조된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세계정세에 국내외 민족운동세력이 모두 도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운형의 신한청년당이 파리강화회의에 김규식을 특사로 파견하고, 미국 대통령 윌슨에 독립청원서를 전달하고, 정의감에 불타는 일본의 조선 유학생들이 일본 제국 한복판 도쿄의 심장부에서 용감하게 2.8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갈라졌있던 천도교-기독교-불교계의 국내 종교지도자들이 민족대표 33인으로 함께 모여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조선의 YMCA-천도교 계열이 겁도 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한성임시정부를 선포할 수 있었던 까닭은, 어이없게도 당시 대부분의 민족지도자, 아니 이천만 조선민중 대부분이 낙관적인 분위기에 도취되어 "조선이 곧 독립될 것이다"라는 희망적인 환상에 사로잡혀있었던 데 있다. 3.1운동 초기 거리에 뛰쳐나왔던 민중의 상당수가 '조선이 정말 독립된 줄 착각하고' 만세를 불렀다는 사실은 당시의 분위기가 얼마나 근거없는 환상에 기초한 모래알같은 신기루에 불과했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3.1 운동은 분명 성공한 만세운동이다. 3.1운동은 세계 각국의 피압박 민족, 특히 '억압받는 다수'였던 중국-인도의 민중에게 '우리도 저항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의 싹을 틔웠고 중국의 5.4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해외언론의 주목 속에서 일제 식민통치의 만행을 전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했으며 조선 독립운동의 역량을 과소평가하던 총독부와 일제 당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조선민중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한 일본 총독부의 통치방식을 좀 더 온건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바꾸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비록 껍데기 뿐일지언정, 우여곡절끝에 1940년대까지 명맥을 이어간 식민지 시대 최초의 "해외망명정부", 아니 한국사 최초의 "민주공화국"을 탄생시킴으로써 독립운동의 구심점을 형성하고 나아가 '민주공화국의 수립'이라는 한국의 근대국민국가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인 방향을 최초로 설정하는 데 성공했다. 3.1운동이 '결과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사에 길이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위해 목숨을 다한 수많은 영령들께 오늘의 영광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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