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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이문식,류승룡 / 이준익 나의 점수 : ★★★☆ 평양성은 한 편의 잘 만든 블랙코미디 영화다. 이준익 감독 특유의 역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준익은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 (반농담이긴 했지만)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상업영화에서 은퇴하겠다고 선언할 정도로 작품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그 자신감은 현실에서 흥행으로 증명되었다. 명민좌를 앞세운 조선명탐정의 엄청난 흥행몰이에 빛이 가려지긴 했지만 현재 추세로 가면 이준익의 은퇴(?) 마지노선인 손익분기점 250만은 무난히 돌파할 듯 하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평양성은 2003년 개봉된 황산벌의 후속작이다. 전작이 한국에서 블랙코미디 전쟁영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성공작이었던만큼 후속작이 가진 부담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인지 전작에 대한 부담감이 작품 곳곳에서 엿보였다. 영화는 끝내 그 부담감을 떨치지 못하고 코미디와 현실 비판 사이에서 어색한 균형을 유지한다. 개인적으로 정치풍자와 사회성 짙은 스토리를 좋아하는 탓에 전작인 황산벌보다 더 재밌게 봤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코미디 영화로서의 재미는 전작에 비해 떨어진다. 휴먼영화를 지향하다가 너무 직설적인 메시지를 날 것의 대사로 전달하면서 흐름이 어색해지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확실히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고, 역사적 사실에 무지하거나 정치 풍자에 별 관심없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그저그런 코미디 영화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코미디적 요소를 희생한 덕택에, 권력을 둘러싼 인간군상의 적나라한 행태는 전작보다 훨씬 디테일하게 묘사된다. 전작이 전쟁의 비인간성을 부각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면, 이 작품은 고구려-신라-당 사이를 둘러싼 엇갈리는 이해관계와 정치적 역관계에 좀 더 집중한다. 영화는 김유신(정진영)과 거시기(이문식)라는 두 축을 통해 전쟁의 비인간적 측면 뿐만 아니라 파워게임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적 욕망의 교차까지 밀도있게 조명한다. 그리고 그 풍자를 발판삼아 전작보다 더 날카롭게 현실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를 남긴다. 영화는 이름없는 민초를 상징하는 거시기(이문식)와 지배엘리트를 상징하는 김유신(정진영)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연개소문의 세 아들, 그 중에서도 중심인물인 남건(류승룡)은 전체적인 스토리에서 비중있는 역할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아쉽게도 전작의 계백(박중훈)이 보여줬던 임팩트는 없다. 전쟁이냐 협상이냐를 둘러싼 형제 간의 충돌이 어떻게 허무하게 고구려의 역량을 갉아먹는지, 영화는 담담하지만 다소 슬프게 보여준다. 전쟁에 대한 공포와 살아남고 싶은 욕망은 사실 국가적 위기 앞에 일치단결하는 낭만적 애국보다 훨씬 리얼리티에 가깝다. 스토리텔러는 백제 출신의 신라 병사 거시기다. 그는 이 영화에서 주연으로 부상하여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맡는다. 영화 중간에 쌩뚱맞게 튀어나온 갑순(선우선)과의 에피소드는 다소 작위적이란 느낌이 들지만, 어쨌든 그는 온 몸으로 "전쟁이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웃으면서 살아가는 민초의 힘을 상징한다. 영화가 전달하려는 휴머니즘은 바로 이 거시기를 통해서 완성된다. 그의 절규는 심지어 "정치를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면서 전쟁을 주도하는 장수들까지 숙연하게 만든다. 모두가 억지로 전쟁터에 끌려와서 신세한탄하는 와중에 출세를 위해 홀로 설치는 문디(이광수)는 작품 속에서 "더 나은 삶"을 향한 상승 욕구로 인해 도박을 벌이는 민초들의 또다른 모습을 상징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이다. 그는 초반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바둥치는 거시기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전쟁의 추악한 실체를 점차 깨달아가면서, 오히려 "더 현실적인 캐릭터"로 거듭난다. 문디가 특공대 차출에 대한 보상을 둘러싸고 김유신과 벌이는 협상은 민초의 순진함과 영악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결국은 그런 것이다. 문디와 같은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꿈꾸는 삶이란 게 사실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권리가 있는 소박한 욕망의 실현에 불과하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최고의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정진영이 연기한 김유신이다. 김유신은 능글맞은 노회한 정치가이다. 전작의 황산벌을 능가하는 마키아벨리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마키아벨리스트다. 김유신은 절대 전쟁을 치루면서 "국가의 영광"이나 "정의로운 희생"을 논하지 않는다. 그는 쿨하게 "전쟁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전쟁은 철저히 정치의 연장이고, 정치 또한 전쟁의 연장이다. 하지만 "정치를 아는만큼" 거시기나 문디같은 무지한 민초들의 요구 앞에 결코 둔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소탈하게 일개 병사들과 담판을 지을 줄도 알고, 거시기의 간절한 소망 앞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미래를 축복해줄 아량이 있는 "정치가"이다. 정진영은 이보다 더 훌륭한 김유신 연기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마도 역사 속 김유신의 실제 모습에 상당히 가까울 가능성이 높은 캐릭터를 훌륭하게 소화한다.(선덕여왕에서 엄태웅이 연기한 김유신은 정말 최악이다. 로맨티스트 김유신이라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오히려 이러한 현실적인 김유신이기에, 진정한 의미의 "민족영웅"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모두가 눈앞에 고구려와의 전쟁에 온 신경을 집중할 때 김유신만은 냉정하게 "당나라와의 전쟁"에 대비하고, 그 계산에 따라 철저하게 "엇갈리는 인간들의 욕망"을 최대한 신라에 유리한 쪽으로 활용하고자 노력한다. 고구려와의 미묘한 협력 시도 역시 이런 철저한 계산에 따라 나온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런 의미에서 지극히 함축적이다. 마지막 장면은 사실상 나당전쟁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는데, 휴머니즘과 반전평화주의와 민족주의 정서가 교묘하게 뒤섞이면서 "주어진 한계상황에서"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시나리오를 기획한 김유신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집에 가자"고 선언한다. 그 뒤로 이어지는 문디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그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게 진정한 승리"라고 못 박는다. 그렇다. 전쟁이란, 권력자에게도 피곤한 것이다. 현실주의적 인간의 전형인 김유신은, 승리하기 위해 불가피한 전쟁에 나왔지만, 전쟁을 끝낼 수 있게 될 때가 오자 주저없이 평화를 택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유신은 삼국을 통일한 민족영웅이 아니라, "전쟁을 종결"했다는 의미에서 진정한 민족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는 냉혹한 정치가였지만, 그 냉혹함으로 전쟁을 종식시켰다. 막스 베버의 개념을 빌리면, 김유신은 비록 뜨거운 "심정윤리"를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차가운 "책임윤리"를 온 몸으로 체화함으로써 뚝심있는 책임감과 그에 따른 최선의 결과를 보여준 유능한 정치가였다. 영화는 거시기를 통해 전쟁의 비인간성과 무의미함,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희망을 논했고, 동시에 김유신을 통해 그 "무의미함"의 악순환을 종결짓고 희망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은 냉정한 정치가란 사실을 보여줬다. 말하자면 이렇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다. 그것은 한 편으로는 거시기의 선택처럼 피맺힌 한을 아래로부터 쏟아내는 민중적 요구의 대가이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김유신의 결단처럼 차가운 열정과 책임감을 가지고 현실을 직시하면서 미래를 내다보는 정치의 산물이기도 하다. 필자가 영화 평양성을 통해 읽어낸 가장 중요한 정치적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다. 정치는, 현실이다. 다른 사람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각자의 위치에서 발딛고 있는 바로 그 현실이란 것이다. P.S : 문무왕 역으로 나온 황정민은 거의 카메오 수준으로 짧게 몇 번 나오고 말았는데, 그 몇 개 안되는 씬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웃겨죽는 줄 알았다 ㅋㅋ 능청스럽고 익살맞은 문무왕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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